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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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마이오스 신화 | 거지로 변장한 주인을 못 알아본 돼지치기, 끝까지 곁을 지키다

에우마이오스 신화 | 거지로 변장한 주인을 못 알아본 돼지치기, 끝까지 곁을 지키다

오두막 앞에 낯선 거지 한 명이 다가서자 사나운 개들이 한꺼번에 달려듭니다. 하마터면 물어뜯길 뻔한 그 순간, 돼지치기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개들을 쫓아내고는 오히려 미안해해요.

이 돼지치기가 에우마이오스입니다. 그리고 그가 방금 구해준 거지는,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자신의 주인 오디세우스예요. 다만 에우마이오스는 그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누구든 재워주지만, 쉽게 믿지는 않는 사람

에우마이오스는 낯선 손님을 골풀과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잠자리로 안내하고,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대접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간단해요.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오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나그네와 거지는 모두 제우스에게서 온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습니다.

식사를 나누며 그는 자기 주인 이야기를 꺼냅니다. 오디세우스는 "가장 훌륭한 주인"이었는데 트로이 전쟁으로 그를 잃었다면서, 전쟁의 발단이 된 헬레네의 가문이 통째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해요. 열두 개 무리에 이르는 소와 양과 돼지와 염소, 그 많은 재산을 구혼자들이 날마다 축내고 있다는 하소연도 이어집니다.

그런데 손님이 "그 오디세우스라면 내가 소식을 안다"고 말하자, 에우마이오스는 오히려 마음을 닫습니다. 전에도 비슷한 말로 자신을 속인 여행자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번 달 안에 주인이 돌아올 거라고 손님이 재차 장담하자 그는 "그런 좋은 소식을 전해도 상은 없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는 잠자리와 옷은 계속 내주면서도, 그건 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손님을 지키는 신에 대한 예의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요.

돼지치기가 되기 전, 시라섬의 어린 왕자였다

에우마이오스가 지금처럼 오디세우스 집안에 매인 몸이 된 데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원래 시라라는 섬에서 크테시오스 왕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신과 견줄 만하다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고 평온한 섬의 왕자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평온을 깬 건 섬에 들른 페니키아 상인들이었어요. 그들은 궁의 하녀 한 명을 꾀어냈고, 그 하녀는 자기 몸값 대신 왕의 어린 아들까지 함께 데려가 팔아넘기기로 상인들과 짜고 맙니다. 온 나라 남자들이 회의에 모인 틈을 타 하녀는 술잔 세 개를 몰래 챙기고, 어린 에우마이오스를 데리고 배가 있는 항구로 달아났어요.

항해 도중 그 하녀는 여신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배 밑바닥으로 쓰러졌고, 그대로 바다에 던져집니다. 배는 이타카까지 흘러왔고, 그곳에서 라에르테스가 값을 치르고 그 소년을 사들였어요. 왕자였던 아이가 남의 재산으로 팔려 온 것이 이 사람이 돼지치기가 된 시작이었습니다.

아들의 귀향, 그리고 자신이 없는 사이 벌어진 일

세월이 흘러 에우마이오스는 오두막에서 거지 행세를 하는 손님과 함께 지내던 중, 낯익은 발소리를 듣습니다. 필로스와 스파르타를 돌고 온 텔레마코스가 돌아온 거예요. 그는 들고 있던 그릇마저 내려놓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려요.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처럼요.

텔레마코스는 어머니 페넬로페가 밤낮으로 울며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에우마이오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을 어머니에게만 조용히 알리고, 구혼자들 눈에 띄지 않게 곧장 돌아오라는 것이었어요. 할아버지 라에르테스에게도 알릴지 묻는 에우마이오스에게 텔레마코스는, 그건 어머니가 하녀를 시켜 전하게 하면 된다며 말립니다. 에우마이오스는 신발을 신고 곧바로 마을로 향해요.

그가 자리를 비운 그 틈이, 하필 가장 중요한 장면이 벌어지는 시간이 됩니다. 여신 아테나가 나타나 오디세우스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고, 아들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이르거든요. 처음엔 믿지 못하던 텔레마코스도 결국 아버지를 알아보고 둘은 얼싸안아 웁니다. 20년을 기다려온 사람과 그 곁을 20년 지켜온 사람이 함께한 자리인데, 정작 두 사람을 이어준 에우마이오스만 그 순간을 놓친 셈이에요.

그가 돌아왔을 때 오디세우스는 다시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에우마이오스는 항구에 무장한 사람들을 실은 배가 들어오는 걸 봤다고, 구혼자들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할 뿐, 자신이 놓친 재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였어요.

궁으로 가는 길, 조롱과 늙은 개의 마지막 인사

다음 날 텔레마코스가 먼저 궁으로 떠나며 에우마이오스에게 한 가지를 맡깁니다. 거지가 된 손님을 마을로 데려가 아무에게나 구걸하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에우마이오스는 지팡이까지 챙겨주며 손님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샘터 근처에서 염소치기 멜란티오스가 두 사람을 앞질러 가며 조롱을 퍼붓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거지를 왜 데려가느냐고 에우마이오스를 비웃고, 저 손님은 궁에서 매만 맞을 거라고 악담까지 해요. 그가 지나가자 에우마이오스는 샘의 님프들에게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조용히 빌며, 멜란티오스의 오만함을 곱씹습니다.

궁 앞에 다다르자 잔치 음악과 고기 굽는 냄새가 흘러나옵니다. 그때 거름더미 위에 누운 늙은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와요. 오디세우스가 저렇게 훌륭해 보이는 개가 그저 식탁 옆에서 얻어먹기나 하는 개인지 묻자, 에우마이오스는 저 개가 바로 떠나간 주인의 사냥개였다고 설명합니다. 한창때는 숲의 어떤 짐승도 저 개를 피해 가지 못했는데, 주인이 없는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말을 마치고 에우마이오스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그 개 아르고스는 20년 만에 곁을 지나는 주인을 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인의 마지막 옛 흔적을 배웅한 셈이 되었어요.

흉터 앞에서, 마침내 듣게 된 진실

활 시합이 시작되기 전, 오디세우스는 에우마이오스와 소치기 필로이티오스를 따로 불러내 마당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그러고는 "만약 신이 오디세우스를 데려온다면, 너희는 그의 편에 설 사람들이냐"고 묻죠. 두 사람이 진심으로 그 귀향을 바란다고 답하자, 그는 비로소 정체를 밝힙니다.

증거는 말이 아니라 다리에 남은 흉터였어요. 파르나소스산에서 멧돼지 사냥을 하다 생긴 그 상처를 보여주자, 두 사람은 자세히 살펴본 뒤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20년 동안 다른 사람 몫까지 견뎌온 충심이, 그 순간 비로소 보상을 받은 셈이에요.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다음 할 일을 지시합니다.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에게 활을 건네줄 사람이 바로 에우마이오스였고, 여자들에게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무슨 소리가 나도 나오지 말라고 이르라는 지시도 함께였어요. 필로이티오스에게는 바깥마당 대문을 단단히 잠가두라는 임무가 떨어집니다. 두 사람이 그저 믿고 따르는 대신 직접 자신의 역할을 지시받는 순간, 이 재회는 다음 전투를 위한 준비로 곧장 이어집니다.

위협을 무릅쓰고 활을 건네다

필로이티오스는 배에 쓰던 밧줄로 조용히 대문을 걸어 잠그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오디세우스를 지켜봅니다. 반면 에우마이오스의 몫은 훨씬 눈에 띄는 일이었어요. 아무도 당기지 못한 활을 손님에게 건네주려 하자 구혼자들이 거세게 위협하며 그를 막아섭니다.

거지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활을 만지느냐는 호통 앞에서 그는 잠시 움츠러들지만, 텔레마코스가 큰 소리로 계속하라고 다그치자 다시 용기를 냅니다. 그는 결국 위협을 무릅쓰고 활을 손님의 손에 쥐여준 뒤, 시켜둔 대로 유모 에우뤼클레이아에게 여자들 방문을 잠그라고 전합니다.

창을 들고 곁을 지킨 마지막 하루

텔레마코스가 갑옷과 창을 챙겨주자 에우마이오스는 필로이티오스와 나란히 무장하고 오디세우스 곁에 섭니다. 싸움이 벌어지자 그는 창을 던져 엘라토스를 쓰러뜨리고, 이어 폴리보스를 맞히고, 자신을 모욕했던 크테시포스의 가슴을 창으로 꿰뚫으며 "말버릇 고약한 자야, 다시는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고 쏘아붙입니다.

싸움 중에 그는 염소치기 멜란티오스가 몰래 창고로 들어가 무기를 더 가져오려는 걸 알아채고 오디세우스에게 알립니다. 오디세우스의 지시로 그와 필로이티오스는 창고 안에서 멜란티오스를 붙잡아 머리채를 잡고 손발을 묶은 뒤, 밧줄로 몸을 옭아매 서까래에 닿을 만큼 높이 매달아버려요.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손님을 함께 조롱했던 그 염소치기에게, 이번에는 에우마이오스가 직접 대가를 치르게 한 셈입니다.

구혼자들이 모두 쓰러진 뒤에도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시신을 마당 밖으로 나르고 식탁과 의자를 씻어내는 뒷정리를 도왔고, 주인을 배신했던 하녀들을 마당 한쪽으로 끌고 가는 처벌에도 함께했습니다. 20년 전 낯선 상인의 배에 실려 온 소년이, 그날만큼은 자기 손으로 그 집의 질서를 되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원전으로 더 따라가고 싶다면

여기서 정리한 장면들은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온 뒤부터 구혼자를 처단하기까지, 이야기 후반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건들이에요. 에우마이오스가 손님을 맞이하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활을 건네고, 창을 드는 이 순서 하나하나가 원문에서는 훨씬 촘촘한 대화와 세부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그가 왕자로 태어나 팔려 온 사연이나, 활을 건네던 그 짧은 망설임의 순간은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부분이에요. 그 대목들을 원문 번역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민음사에서 나온 김기영 번역 오뒷세이아(ISBN 9788937470219)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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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이 겪은 사건들이 전체 줄거리에서 어디쯤 자리하는지는 오디세이아 줄거리 정리에서, 그와 함께 아버지를 다시 만난 아들의 여정은 텔레마코스 신화 정리에서 이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두막에서 재회를 기다리던 아내 쪽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페넬로페 신화 정리를 함께 보세요.

원작을 각색한 영화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는 영화 오디세이 관람 가이드오디세이 출연진 정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