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 제우스 | 크로노스의 아들에서 사르페돈의 죽음을 지켜본 순간까지
전장 한복판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어요. 한쪽은 트로이 편에 선 리키아의 왕 사르페돈이고, 다른 한쪽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은 파트로클로스입니다. 이 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둘 중 한쪽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곧 죽을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는 점이었죠. 제우스가 이 순간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떤 대가로 돌아오는지는 이 글 뒤쪽에서 순서대로 다룹니다. 먼저 이 신이 어디서 왔고, 누구와 가족을 이루고 있는지부터 짚어볼게요.
크로노스의 아들, 올림포스의 왕이 되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올림포스에 모인 신들 전체를 다스리는 왕의 자리에 오른 존재로 그려져요.
이 신에게 주어진 영역은 하늘과 날씨, 그리고 법과 왕권입니다. 자연 현상을 다스리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의 질서와 통치 규범까지 관장한다는 점이, 제우스를 다른 올림포스 신들과 구분 짓는 자리로 만들어요.
헤라, 형제이자 배우자로 곁에 있는 여신
제우스와 헤라는 형제이면서 동시에 배우자 관계로 나타납니다. 인간 세계의 가족 관념으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이 시기 신화가 신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에요.
일리아스에서도 두 신은 부부이자 남매로서 여러 장면에 함께 등장합니다. 뒤에서 다룰 사르페돈의 운명을 두고 벌어지는 대화 역시, 제우스가 다른 누구도 아닌 헤라와 나누는 장면이라는 점이 중요해요.
아테나, 딸로 불리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제우스의 딸로 전해지는 신이에요. 지혜와 전략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그려지며, 뒤에서 다룰 오디세이아의 신들의 회의에서도 아버지 곁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함께 논의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아테나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세부는 전승마다 갈립니다. 이 글에서는 확인된 부분, 즉 아테나가 제우스의 딸로 자리매김한다는 사실까지만 다루고, 확정되지 않은 탄생 경위는 단정하지 않아요. 아테나가 실제로 어떤 사건들에서 활약하는지는 아테나 신화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오디세이아 1권, 신들의 회의를 열다
제우스가 계보상의 이름으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로 판단을 내리는 장면은 오디세이아 1권에서 확인됩니다. 회의를 연 제우스는 먼저 아이기스토스 이야기를 꺼내요. 헤르메스를 보내 아가멤논의 아내를 넘보지 말고 그를 죽이지도 말라고 미리 경고했는데도, 아이기스토스는 그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죠.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신들 탓으로 돌린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말을 받아 아테나가 화제를 오디세우스 쪽으로 돌립니다. 티탄 아틀라스의 딸인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섬에 붙들어 두고 온갖 방법으로 고향을 잊게 만들려 한다고 전하며, 트로이 앞에서 그토록 많은 제물을 바친 그에게 왜 계속 화가 풀리지 않는지를 묻습니다.
제우스는 오디세우스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포세이돈이 아들 폴리페모스가 눈을 잃은 일로 여전히 그를 쫓고 있다는 사정을 함께 짚어요. 그러면서 이제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그가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며, 포세이돈 혼자서는 다른 모든 신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아테나는 자신이 직접 이타카로 가서 텔레마코스의 마음을 다잡겠다고 나섭니다. 헤르메스가 칼립소에게 가 오디세우스를 놓아주게 하는 결정은 이 회의가 아니라, 이후 오디세이아 5권에서 별도로 열리는 신들의 회의에서 나옵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아테나는 황금 샌들을 신고 청동 창을 든 채 곧바로 자리를 떠, 멘테스로 모습을 바꾸고 오디세우스의 집에 나타납니다.
일리아스 16권,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갈린 선택
앞서 전장에서 마주 보고 있던 두 사람, 사르페돈과 파트로클로스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제우스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헤라에게 자신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사르페돈을 전장에서 그대로 들어 올려 고향 리키아 땅에 무사히 내려놓을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 파트로클로스의 손에 쓰러지도록 둘지였어요.
헤라는 이 생각에 반대합니다. 그가 든 이유는 두 가지였죠. 하나는 사르페돈이 오래전부터 죽음이 정해진 운명의 인간이니, 그 운명을 신의 힘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만약 제우스가 자기 아들을 그렇게 구해낸다면, 트로이 전장에서 싸우는 다른 신들의 자식들도 저마다 같은 구원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신들 사이에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경고였어요.
제우스는 이 말을 받아들입니다. 사르페돈을 구해내는 대신, 그가 죽는 순간 땅 위로 핏빛 비를 내려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쪽을 택해요. 그리고 곧이어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을 쓰러뜨립니다. 아버지가 힘으로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다른 신과 인간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지켜본 셈이었죠.
아들을 잃은 뒤, 제우스가 내린 마지막 명령
사르페돈이 숨을 거둔 뒤에도 제우스는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는 아폴론에게 명령을 내려요. 전장에 쓰러진 사르페돈의 시신을 싸움터 밖으로 옮기고, 강물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낸 뒤, 향유를 발라 불사의 옷으로 갈아입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몸을 정갈히 한 시신은 아폴론의 손을 떠나 잠의 신과 죽음의 신, 이 쌍둥이 형제에게 넘겨집니다. 두 신은 사르페돈을 그의 고향 리키아까지 데려가고, 그곳 사람들은 무덤과 기둥을 세워 그를 묻어요.
구해낼 힘이 있었지만 구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대신 몸을 씻기고 고향으로 데려가는 마지막 길만큼은 직접 챙긴 셈이에요. 이 결정 하나가 제우스라는 신이 인간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습니다.
제우스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면
여기서 다룬 오디세이아 1권과 일리아스 16권은 각각 한 권 분량의 사건 중 일부예요. 신들의 회의 이후 오디세우스가 실제로 어떻게 귀향길에 오르는지, 사르페돈의 죽음 이후 트로이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각 서사시 안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오뒷세이아(김기영 역)는 그리스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긴 판본이에요. 오디세우스 쪽 이야기를 원전 그대로 따라가고 싶은 분들께 맞는 선택지입니다.
제우스 한 신이 아니라 크로노스·헤라·아테나까지 이어지는 올림포스 신들 전체의 계보와 관계를 한번에 정리해보고 싶다면, 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현대지성)도 참고할 만해요. 신들의 가족 관계와 사건들을 함께 엮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관련 도서 추천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이 책 자세히 보기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인물들
제우스와 형제이자 배우자인 여신의 이야기는 헤라 신화에서, 아버지 곁에서 오디세우스를 돕는 딸의 이야기는 아테나 신화에서 이어집니다.
제우스보다 앞선 세대이자 아버지인 티탄 신의 이야기는 크로노스 신화에서, 이 글에서 다룬 오디세이아 신들의 회의가 전체 귀향 이야기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는 오디세이아 줄거리 정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르페돈이 목숨을 잃은 전쟁 전체의 흐름은 트로이 전쟁 등장인물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어요.